그림에 숨은 마음, 마음에 숨은 그림

이 대 일(명지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정지용의 시집「백록담」을 펼쳐들면 시 한 편에 한 폭씩의 풍경화가 따라 오르곤 한다. 해방 직후에 출간된 이 자그마한 시집은 자연을 소재로 한 시인 특유의 정서가 자구마다 자우룩하여 그 마음의 향내가 그윽하기만 하다. 게다가 이런저런 풍경까지 그려져오니 이건 정말 시정(詩情)과 화정(畵情)이 멋지게 어우러진 시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지럽고 혼란하기 그지없었을 해방기에 어찌 이렇게 간정된 글과 정서로 스스로의 고아(高雅)한 자태를 드러낼 수 있었는지, 세속에서 초탈한 듯 자신만의 길을 담담히 걸어 나간 매무새가 그저 곱기만 하다. 그리하여 하늘과 구름, 산골짜기에 폭포와 물소리와 새소리, 나비와 인동초 같은 것들에 기대어 따뜻하고도 외로운 정념의 세계를 그림처럼 말하고 있다. 북송시대의 소식(蘇軾;1037~1101)이 당나라 때 왕유(王維;699~759)의 시를 읽으며 말했다는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라는 구절이 영락없는 「백록담」이다.

화가 박운식의 그림 앞에서 문득 이 시집이 떠오름은 바로 그림 속에 옹골지게 자리하고 있는 독특한 시정 때문이다. 여기에 숨었는, 아니 이 분의 가슴 속에 남몰래 내려앉았는, 겨울날의 응달 같은 서정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정지용의 시처럼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를 기반으로 한 것이면서도 오직 그 만의 독특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그 내용을 쉬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리하여 그림 속을 맥맥히 흐르고 있는 건 그 어느 날엔가 가슴 깊이 인각되어 화석이 되어버린, 그 무언가를 향한 망망연한 눈길이다. 이 때문에 그가 보아내고 풀어낸 풍경들은 우리의 눈길을 타고 가슴으로 젖어들며 그저 마음을 아릿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런 정서를 자아내게 만드는 시각적인 단서는 바로 그림의 독특한 공간성에 있다. 다시 말해 그의 대개의 그림에서 보여지는 개활성의 원경투시법을 통한 구성에 이런 정서의 근간이 자리하고 있다. 뚜렷한 지향점이나 목적 없이 저 멀리로 마냥 펼쳐져나간 밭이나 능선 혹은 길 같은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한 채 그 무언가 보이지 않는 걸 찾아 해매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들판의 농가 주택이나 길가에 홀로 선 자작나무 혹은 소나무 등 구체적인 소재가 부각되어 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집이나 나무 혹은 눈쌓인 길가의 억새 무더기 같은 것들은 그리움의 대상으로나 존재하여 활성을 멈춘 상태로 고요히 잠들어 있음에서다. 이러한 소재는 우리 누구에게나 낯익은 것들임에도 그의 시선 속에서는 적요(寂寥)한 정물이 되어, 먼 발치에서 깊이 잠들어있는 것이다.

나는 이 분의 그림을 볼 때마다 앤드류 와이어스(Andrew Wyeth;1917~2009)의 그림, 특히 「크리스티나의 세계(Christina\'s World)」를 떠올리게 되거니와, 자연 속에서 인간의 절대고독과 더불어 ‘나’라는 실존과 동떨어진 ‘자연’을 읽어낸 그의 시선을 겹쳐보게 된다. 아울러 그림의 가치와 의미의 문제를 떠올리며 회화에서의 시성(詩性)과 더불어 실존적인 맥락에서의 우리네 인생의 고(苦)와 예술의 문제를 생각해보게 된다.

박 운 식

개인전14회(인사갤러리.월산미술관,지구촌교회.신세계백화점 경기점갤러리,

갤러리아트 연. 분당 풀시티 갤러리.정구찬 갤러리.갤러리 청하)

2013한국구상대제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2회 대한민국 크리스천 아트피스트(광림교회 사회복지관 전시실)

제11회 중국 상해 국제아트페스트벌, 환갤러리 초대전,

양주시 4.18 연화축제기념전(중국 양주),현대미술관 건립전(선화랑)

제7회 대한민국 아트페스트벌(대구),강원아트페어(치악예술관)

현재 한국미협, 용인미협 ,아시아미술가협회(A.A.A) 회원